[visit] 남부목재(주) 채광식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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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 남부목재(주) 채광식 사장
  • 월간 WINDOOR
  • 승인 2011.09.0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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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목재(주) 채광식 사장


‘예다지’ 브랜드와 남부목재 영업 마인드의 만남

 

 


남부목재의 채광식 사장은 처음 도어 대리점 시작을 신림동에서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다지 코드를 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의 시장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96년도에 예다지 대리점 신청을 했지만 근접 거리에서는 여러 대리점을 줄 수 없다는 이유로 대리점을 달지 못했고 빌라가 주를 이뤘던 신림동 주변에서는 예다지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더욱이 2000년도 들면서는 예다지를 찾는 고객들이 많아졌고 근처 예다지 대리점들은 큰 매출 향상을 보았다. 예다지가 성행한 이유는 90년도에는 인테리어 개념이 도입이 되지 않아 디자인 등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예다지는 도어를 인테리어 개념으로 바꾸었고 브랜드 인지도나 제품의 질도 타사에 비해 우수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다지는 초창기 시장에 진입할 때는 큰 시선을 끌지 못했다. 초반에는 마진 폭이 일반 사재 제품보다 높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도어 취급점들도 예다지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 이란 시간이 지나고 시장에서 브랜드가 안착되면서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예다지의 흥행을 예상 못한 채 대표는 처음에는 예다지 코드를 따지 못해 내장재만 시공하고 문짝과 문틀은 예다지로 시공을 했기 때문에 큰 이득을 보진 못했다.


“예다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리점 코드를 따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죠. 주위 예다지 대리점들이 매출 향상되는 것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시장을 보는 안목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중요한 시기였지요.”


無에서 시작한 현장 영업이 지금의 자산
남부목재의 채광석 대표의 처음 사업이 창호는 아니였다. 창호 시장에 뛰어든 케이스 중에 조금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채 대표의 처음 사업은 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이였다. 90년대 초에는 강동구에서 교사 10명 정도를 거느리고 보습학원을 운영했었다.


하지만 사교육 단속이 심해지면서 학생 수가 줄었고 그는 다른 사업을 찾아봐야 했다. 그때 채 대표는 신림동에 살고 있었는데 문득 다가구가 많은 신림동에서 건축 자재를 판매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건축마감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건축자재에 대해서 몰랐기에 이것 저것 손이 닿는 대로 팔기 시작했었다. 그러면서 96년도부터는 도어만 집중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택은 적중했고 98년도부터 건축경기가 살아나면서 우후죽순 다가구 주택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건축경기의 붐을 맞았고 최고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고 채 대표는 설명한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까지 영업을 하러 다닐 지경이였다고. 그의 영업 방식은 무식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것이 없었기에 현장이 곧 그의 학습 공간이었다.
발주를 받던 안 받던 공사 현장에 직접 가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직접 해결해주고 친분을 쌓아가면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영업은 사람들과의 친분을 점점 쌓여갔고 지금은 멀리 지방에서도 발주가 들어온다고 한다. 건축마감재를 시공하는 기술자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현장에서 보고 배웠습니다. 영업은 사람의 살과 살이 부딪히면서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현장 영업은 초반부터 많은 거래처를 확보하는데 큰 힘이 되었지요.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발주가 들어옵니다.”

 

남부의 영업 마인드가 예다지를 만나다

남부목재는 처음 2명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12명의 식구로 늘어나 있다. 모두 자체 제작 직원들이고 시공은 외주에 맡긴다. 현재 신림동에 위치한 공장은 120평 정도로 아담하다. 하지만 매출은 작은 공장에 비해 높은 편이다. 거기에 윈도우플러스 대리점을 근처에 가지고 있고 광명에서 400평 규모의 창고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남부목재는 예다지의 재고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예다지의 제품의 우수성을 남부목재는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고 달리 표현하자면 그만큼 판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부목재에서 가장 많이 취급하는 제품은 ABS도어이다. 멤브레인 도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특판 시장보다는 신림동이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인지 ABS도어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신림동에서는 2007년부터 원룸을 많이 짓기 시작했는데 특히나 원룸에서는 습기가 강한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ABS도어의 매출이 더 높았다고 한다.


남부목재에도 어려운 시기는 있었다. 사업을 얼마 시작하지 않아서 찾아온 IMF로 위기가 찾아 왔다. 초창기에 일을 많이 했지만 대부분이 외상이었다. 채 대표는 “당시에 수금이 되지 않아 상당히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련을 잘 겪고난 지금의 남부목재는 역시 새롭게 다시 태어난 예다지와 함께 사이좋게 손잡고 서로의 목표에 한발씩 다가가고 있다. 채 대표는 요즘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쵬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시장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자신 만의 목표를 위해서이다. ‘영원한 거래처는 없다’와 ‘초심을 잃지 말자’가 그의 경영 철학이다.


“동종 업계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출혈 경쟁’과 ‘상도’입니다. 공사가 끝난 현장에 가서 수금을 방해하는 행동들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업 직원들에게 소양교육을 잘 시켜서 업체마다의 최소한의 영업 방침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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