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 한화L&C 울산대리점, (주)동방E&C 장길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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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 한화L&C 울산대리점, (주)동방E&C 장길주 대표
  • 월간 WINDOOR
  • 승인 2010.05.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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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L&C 울산대리점, (주)동방E&C 장길주 대표
창호와 만난 지 24년 됐습니다

 

 

 

 

 (주)동방E&C 장길주 대표
울산광역시는 인구 110만이 조금 넘는 수준의 작은 도시이고 전국에서도 인구 분포율이 약 2.2% 밖에 안된다. 하지만 울산 창호업계에서 대도시에 못지않게 매출을 올리며 울산 지역에서 확실히 자리 잡은 한화L&C(이하 한화)의 울산대리점 주식회사동방E&C(이하 동방E&C) 장길주 대표를 만나 창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보경공업사를 시작으로 24년을 함께 한 창호
동방E&C 장길주 대표는 1986년 7월 21일이란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사업자를 내고 일을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동방E&C는 울산광역시 북구 명촌동 843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800평 규모. 장 대표를 포함해 직원 14명이 한솥밥을 먹고 있다. 설비로는 2포인트 두 대를 비롯해 기본 설비는 갖추고 있어 하루에 창 500짝 이상 충분히 소화해 낸다. 제 2공장은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에 위치해 있다.
동방E&C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와 상호가 다르다. 처음에는 보경공업사라는 철물면허를 가진 업체부터 시작했다.
장 대표는 보경공업사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울산지역에서 창호업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PVC창 대리점이지만 이전에는 알루미늄창까지 다뤘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창을 다뤘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철물면허를 가지고 창호철물공사를 주업으로 했었다.
시공사로서 일을 하다보니 창을 직접 제작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고 처음에는 중앙리빙샤시의 대리점을 하다 2008년 7월 동방E&C로 상호를 변경했고 한화대리점은 2007년 11월에 등록했다.

 

한화L&C의 브랜드로 발전 역량 키워
한화의 홈샤시는 창호시장에서의 누구나 알다시피 브랜드 파워를 지니고 있다. 동방E&C는 시판을 위주로 하는 업체였다. 하지만 한화의 브랜드를 입고 나서는 특판 시장에도 영업이 가능했다고 한다. 2010년 4월 현재 동방E&C는 시판 위주로 영업을 하지만 특판 물량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판은 순전히 장길주 대표 개인적인 영업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다. 장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영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거기에 동방E&C에는 영업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일들이 장 대표 개인영업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다.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영업은 잘 모릅니다. 영업 직원도 없습니다. 그래도 장사가 잘되는 거 보면 운이 좋았던 거 같습니다. 제가 여기서 태어난 토박이고 제품 하나를 납품해도 성실하게 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한화대리점으로 2008년에 17억 매출을 올렸고 2009년 작년에는 24억의 매출을 올렸다. 30프로 가까운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올해도 작년 수준이라고.

 

2,000평 규모 이전 및 자동화 기계 도입 예정
지금 창호시장에서는 시스템창호에 대해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시스템창호 가공공장도 전국적으로 40개가 넘을 정도다. 여기에 장길주 대표도 시스템창호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눈이 과거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아졌고 창의 기능성이 뛰어난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고 판단한 장 대표는 지금은 울산지역도 서울, 경기 지역과 같이 미비하지만 대세에 따를 것으로 보고 자동화와 함께 시스템창호도 준비 중에 있다.
“회사의 규모가 커졌는데 지금의 명촌동 공장은 너무 작습니다. 2,000평 규모의 공장 부지로 1~2년 안에 공장 이전을 생각 중에 있습니다. 한화 본사에 구축된 자동화 설비를 보고 앞으로는 원가적인 면에서 인건비 포지션을 줄여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자동화 라인의 도입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쉽다
동방E&C 장길주 대표는 신뢰를 항상 강조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일처리는 절대적으로 배제할 것을 강조하는 장 대표는 한 두 번 실수 하면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작은 일이라도 여러 번 확인해서 실수가 없는 일처리를 해왔다.
누구에게도 힘든 일은 있기 마련이다. 장 대표에게도 뼈저린 기억이 남아 있다. 1986년 사업을 해서 승승장구하던 장 대표는 1997년 IMF 구제금융위기를 맞으면서 11년간의 쌓아온 모든 것을 잃었다.
건설사들이 발행한 6억 가량의 어음은 종이조각이 되었고 돌아오는 것은 빛 독촉 뿐이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부도난 어음을 자신이 직접 정리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방어동의 공장하나가 전부였다.

 

정(情)으로 망하고 정으로 흥하고
“그때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잘나가다가 어려워지니까 많이 힘들더라구요. 업보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정리하니 제 2공장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다시 할 수 있는 희망의 불씨는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열심히 팔을 겉어 붙힌 장 대표. 이전에 어음부도를 낸 건설사 사장들이 다시 찾아와 손을 내밀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욕이라도 할텐데 정많은 그는 내민 손을 곰같이 덥석 잡아 버린 것이다.
그런 그의 정다운 경영방침이 업계에서 알려지면서 하나둘씩 그의 곁에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연매출 4억의 동방E&C를 재탄생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화와의 인연도 정(情)으로
그는 대기업의 브랜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한화 이외 타사도 방문했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았다. 지사 직원이 처음에는 ‘OK’를 했지만 이후 기존의 대리점들이 간판을 내릴 정도로 심한 어필을 하는 업체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다. 그가 한화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 당시 한화 부산지사를 맡고 있는 서충현 지사장의 태도 때문이다.
한화를 방문할 당시에도 그에게 설명도 잘해줬지만 무엇보다도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배웅한 것을 보고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 그날 부로 한화의 식구가 되었다.
“한화의 식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타 대기업에서 저가형 창이 나왔고 영업이 잘 되지 않아 본사에 저가형 창 제조를 부탁했지만 시장 질서를 위해 안된다는 본사의 말을 듣고 한화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화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동방E&C의 장길주 대표는 너무도 크지도 너무도 작지도 않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사회에 대한 환원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노인복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동방E&C 장길주 대표가 창호로 성공해 사회 환원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052.288.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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