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동방노보펌(주) 오수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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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동방노보펌(주) 오수호 대표
  • 월간 WINDOOR
  • 승인 2010.05.0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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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겐 투명한 신뢰를, 직원에겐 정직한 가치를

동방노보펌(주) 오수호 대표

 

 

 
1957년 설립해 철재 방화문을 주 생산품목으로 스테인리스 창호, 잡철물 등 건축자재를 생산하고

시공하는 유력 방화문 업체인 동방노보펌(주)는 품질과 신용을 우선시하며 50년 동안 방화문 업계

에 커다란 획을 그어왔다.
2000년 독일의 세계적인 방화문 생산업체인 Novoferm GmbH와 합작하여 더욱 세계적이고 튼튼한 기

업으로 태어난 동방노보펌(주)를 지금까지 있게 한 오수호 대표를 만나 경영철학을 들어봤다.

 

이제 만 52년이 된 동방노보펌(주)는 방화문 전문 제조업체다. 이미 방화문 업계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와 탁월한 기술력을 인증 받은 업체로 신기술을 접목한 고유의 zenith라는 브랜드네임을 붙인

신개념 방화문, 유리방화문, 목재방화문, 방음도어, 장애인용 도어 등 다양한 종류의 방화문을 모

두 생산하고 있다.


동방노보펌이 새롭게 제시하는 제니스라는 브랜드의 방화 도어는 정점, 극치, 절정이라는 뜻의 안

락하고 우아한 생활을 추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4mm 두께의 매입형 바람막이를 도입했으며

39dB 방음효과, -15도에도 거뜬한 결로방지 효과가 있다. 2.0W/㎡K의 열관류율을 자랑하는 것은 물

론 기밀성과 내풍압성도 갖췄다. 문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위

한 개발 노력이 동방 노보펌을 지금 이 자리까지 있게 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국내최초로 유엘 인증, 방화문업계의 선두로 자리잡다


철제문으로 시작했던 창업주인 오정섭 회장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와 전통으로 인해

기술적인 노하우로 무장한 동방노보펌(주)가 동종업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

다.
1970년대 방화문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 중동지역에 건설사들의 진출이 활발해지

면서 철제 방화문 수요도 같이 늘어났고 그때 까다로운 외국 규격인 유엘인증을 동방노보펌(주)가

최초로 받게 된 것이다.
이로써 수출을 늘려가며 세계시장에 한국의 방화문 시장을 알리게 됐다. 그 이후 국내에서도 발주

처와 감독기관에 국산자재로 승인을 받아 국내시장에 방화문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게 됐다.

 

“당시에는 방화문에 대한 전문 인력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회사가 해외 규격에

맞는 인증절차인 유엘 인증을 획득하면서 방화문에 대한 기본적인 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었지요.

 

동방노보펌(주)는 국내에서 일찌감치 영국의 비에스, 러시아의 고스트, 중동국가 인증 등 해외에서

요구하는 여러 인증 제도를 획득함으로써 해외에 국내 방화문 시장을 알렸으며 해외에서 받은 인증

절차로 국내 시장의 인정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 세계 유수의 방화문을 생산하는 업체와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외국어에 능통한 여러 명의 직원을 보유한 것은 저희회사의 강점입니다 .”

 

이후 외국 업체들과 기술교환은 물론 우수한 인적교류도 활발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동방노보펌(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선친부터 이어온 동방강건(주)가 동방노보펌(주)

의 시작이었다. 1997년 티센쿠룹이라는 철강계통의 세계적인 그룹 경영진 중 한사람이 오수호 대표

를 찾아와 함께 손을 잡을 것을 제시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국내의 방화문 업계를 조사하고 시장

성이 있다고 판단, 동방노보펌(주)에 투자하고 싶다고 제안을 한 것이다.

 

“처음엔 거절을 했었습니다. 동방강건(주)는 선친께서 물려주신 가업이었고 투자의 필요성도 절실

히 느끼지 못했었죠. 그리고 동업이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처음엔 거절을 했었다가 IMF가 오

게 됐죠.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됐어요.”

 

티센쿠룹의 경영진도 두 달에 한번 꼴로 오 대표를 찾아와 이른바 ‘삼고초려’를 행한 끝에 티센

쿠룹의 계열사 중인 노보펌이라는 이름을 따 동방노보펌(주)가 생겨나게 됐다.

 

“실질적으로 우리 회사가 더욱 크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회사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생각했습니다.”

 

동방노보펌(주) 신뢰와 소통으로 거듭나다


동방노보펌(주)는 잘 알려진 대로 오정섭 초대회장 이후 자녀인 오수호 대표가 이끄는 기업이다.

그러나 처음 방화문 회사를 물려받기까지 오 대표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건설업계, 철문업계가 녹록한 업종은 아니니까 아버

님께서도 처음엔 하지 말라고 만류하셨습니다. 나중에야 아버님이 일구신 사업에 미련이 많이 남으

셨고 제가 해주길 바란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오 대표는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는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신 학문에 푹 빠져 있을 즈음 한

국에서 동방노보펌(주)를 맡아달라는 아버님의 부름을 받고 87년 한국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 후 1992년 경영에 참여했고 1994년 대표이사직을 맡게 됐다. 그가 대표를 맡을 즈음 가장 문제

시 되었던 건 민주화 바람으로 인한 노조의 문제였다고 했다. 노조의 입김이 컸고 직원은 경영진을

또 경영진은 직원을 서로 믿지 않아 기업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이다.

 

“직원들 모두 훌륭하고 괜찮은 사람들이었는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소통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화 자체가 단절된 상황이었죠. 서로 간에 쌓인 깊은 골을 해결하기 위해 노

조의 직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서로 차

차 마음을 열며 극복해 나갈 수 있었죠.”

 

경영자가 한결 같이 올바른 길에 서지 않으면 기업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인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

나아가서는 전체적인 경영침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오 대표는 간파했던 것이다.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는 경영자보다는 이해하고 또 이해시키며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진리도

잊지 않았다.

 

“한 기업의 대표라는 자리는 99개를 잘하더라도 한 가지를 잘못하면 직원들의 불신을 피할 수 없

습니다. 키를 잡은 항해사는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 믿고 따를 수 있겠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그는 이 때문에 경영을 위한 사명과 핵심가치와 동방인 상을 만들었다.

 

“우리회사의 가장 중요한 정신을 정직으로 정했습니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니까 말입니다.”


정직은 경영자와 직원들 간의, 고객과 기업 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선행되어야 할 필수가치임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이로써 동방노보펌(주)는 방화문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성장을

이루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96년에 공장을 화성으로 옮겼습니다. 그 사이에 경영실적도 좋아지고 직원들 간의 팀웍으로 급

성장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직원들과 함께 성과를 내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회사가 발전했

을 때보다 경영인에게 더 보람찬 순간이 과연 있을까요?”

 

동방노보펌(주)가 지향하는 가치는 또 있다. 바로 ‘베품의 삶’이다.


“선친은 가난해서 공부를 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똑똑하지만 공부할 여유가 없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셨죠.”
오 대표는 선친의 뜻을 따라 동성회라는 재단을 설립해 경기도 하남에 학교도 짓는 등 나눔의 경영

을 실천하고 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한결같은 기업


방화문업계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는 세계가 그리고 정부가 점점 고효율에

너지 정책을 강화해 까다로운 조건을 도어에 적용시키려는 움직임이다.

 

“방화문업체가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집에 화재가 항상 나는 건 아니지만

한번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생깁니다. 평생 한번 날까 말까한 사고이기 때문에 자칫 안

일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진짜 장인정신에 입각한 정직한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생명과 직

결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장인정신에 입각한 제대로 된 제품, 직원과 경영자간의 끊임없는 소통과 신뢰, 고객에 대한 한결같

은 정직,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지금의 동방노보펌(주)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어떤 부정직한 유혹

에도 넘어지지 않는 한결같은 기업으로 남을 것”이라는 오 대표의 철칙처럼 동방 노보펌은 지금도

더 강하게, 더 곧고 안전하게 고객과 만나고 있다.
최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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