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미래기계 최종성 대표
상태바
[Visit]미래기계 최종성 대표
  • 월간 WINDOOR
  • 승인 2010.04.08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기계, 최종성 대표
철저한 사후관리가 미래기계의 미래입니다

 

 

 

미래기계 최종성 대표는 기계업계에서는 정도를 걸으며 성장한 인물이다. 그는 나이로 치자면 업계에서 젊은 세대에 속한다. 여타 기계업체들이 다 그러하듯 미래기계도 어렵다는 말이 나올 듯한데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최 대표의 입에는 한 가득 미소가 머문다.

 

맨땅의 헤딩은 아팠다
미래기계 최종성 대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0년 3월. 예전에 알고 지낸 지인과 함께 동업으로 7명의 직원을 데리고 기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연간 10억 매출을 할 정도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후 동업자와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동업을 정리하고 2003년 12월 개인사업자로 전환해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그 당시 최 대표 손에 쥐어진 돈은 단돈 3천만원. 수원의 배양리에 60평짜리 임대를 얻고 나니 자금이 빠듯했다. 직원은 1명이지만 월급 주기도 녹녹치 않았다고.
“당시에는 임대료에 설비투자를 하고 나니 끼니를 때울 돈도 없어 라면, 고구마, 감자 등을 지겹게 먹었습니다. 잠자리를 얻을 돈이 없어 겨울에 콘크리트 사무실 바닥에 종이 박스를 몇 겹 깔고 자곤 했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첫 해 5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면서 조금씩 성장한 미래기계는 2005년 지금의 화성시 정남면 괘량리에 330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 이후 건물과 설비를 갖추면서 2007년도에 비로소 지금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매년 매출 신장
2003년 개인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 최 대표는 매해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창립 당해 년도에는 5억 매출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100% 매출 시장을 기록했고 이후로 2008년까지 매년 3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경기악화로 조금 주춤했다.
이렇게 차분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계판매 후 사후관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래기계의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타 회사 제품을 사용하던 한 업체가 회사로 찾아와 타 회사 제품수리를 의뢰했고 이를 A/S한 계기로 주고객으로 바뀐 경우도 있다고 최종성 대표는 귀뜸한다.
“미래기계는 매년 제품개발 투자에 아끼지 않습니다. 용접기, 절단기, 베아링 등 5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주가 들어온 제품에 대해서는 외주가공 없이 100% 자체 가공을 합니다.”

 

사회 환원하다보니 의외의 결과까지
최 대표는 미래기계를 설립할 당시부터 영업부를 두지 않았다. 자금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의 인맥으로 영업이 커버되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사람 냄새를 좋아한다. 한 번 맺은 인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그는 특별히 소중하게 여긴다. 전국의 5대 가정에 학자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등 청소년불우이웃돕기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관계를 맺다보니 우연치 않은 좋은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봉사활동에서 알게 된 삼성 본사의 임원을 통해 삼성 LED TV 부품을 생산하는 자동화기계를 삼성과 납품계약을 체결하면서 삼성 협력업체로 등록하게 되었다. 지금 공장의 부지에 7억 정도를 투자해 설비를 갖출 예정이며, 5월부터 본격적인 주문제작에 들어 갈 예정이다.
“삼성 협력업체로 등록하게 된 것도 우연이지만 지금까지 건폐율이 20%였던 것이 올해 초 50%로 바뀌면서 부지 매입없이 지금의 부지에 설비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2010년 들면서 이런 여러 가지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수출에도 청신호!
그는 교회를 다닌다. 어려울 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일이 잘 풀렸다는 최종성 대표. 그는 레이스라이센스까지 있을 정도로 차 애호가이기도 하다. 이런 독특한 취미를 가진 최 대표는 수출에 대한 질문에 필리핀의 예를 들면서 미래기계의 수출 청신호를 이야기 한다.
“영업을 한 건 아닌데 필리핀의 한 업체가 필리핀의 미래기계 판권을 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담보금까지 벌써 1억원이 입금된 상태이구요. 수출은 시작이 좋습니다. 중국, 러시아, 카타프, 앙골라 등 수출을 해왔고 앞으로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22살 때 처음 기계에 입문해 현금 100억을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최 대표는 2005년도에는 대구에 경남 지역 A/S를 위해 대구영업소를 개소했고 2008년에는 부여공장을 신설해 대량생산 및 전라도 A/S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올초에는 8천만원 상당의 머시닝센터기를 도입해 작업성을 높였다.
최 대표는 기계업계에게 선을 넘지 않는 영업과 자신의 제품에 끝까지 책임진다면 호황기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당부한다. 불황기 속에 미래기계의 선전이 기계업계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