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 현직ENG 시안 대리점 오천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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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 현직ENG 시안 대리점 오천택 대표
  • 월간 WINDOOR
  • 승인 2012.11.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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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ENG 시안 대리점 오천택 대표


30년 창호 외길 인생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우리나라의 속담이다. 어렵고 고된 일이 있고 난 후에 즐겁고 좋은 일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말이다. 강원도에 보금자리를 두고 있는 PVC 새시 압출 업체 (주)시안(이하 시안)의 평택 대리점 오천택 대표에 걸맞는 속담이다. 젊어서 시공 보조부터 시작해 창호 가공까지 스스로 배워온 그가 이제는 어엿한 시안 평택 대리점 대표가 되었다.

 

우연한 시안 아트윈 제품과의 만남이 인연으로
시안 평택 대리점 오천택 대표는 2년 전 우연치 않게 시안 아트윈 새시 압출바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이전에 대기업의 PVC 새시바를 시공 및 가공했었는데 예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이 시안 아트윈 새시를 권유했고 오 대표가 지금까지 사용한 어떠한 창호보다도 성능이 우수해 이후 시안 대리점 코드를 받았다.


오 대표가 시안 대리점을 시작한 것은 시안 아트윈 새시의 우수성도 있지만 시공만하는 공업사로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공업사는 PVC 가공 마진이 빠지고 대리점들에 일을 받아서 진행하다보니 대리점들에 휘둘릴 수 있는 어려움도 있었다.


여기에 인력난도 시안 대리점을 시작한 동기가 되었다. 시공은 현장 작업이다 보니 기동성도 있어야하고 무거운 PVC 새시를 들어야하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창호 시공자는 현장 잡부로 분류되어 인력 수급이 수월하지 못하다. 하지만 가공 대리점은 공장 내부에서만 작업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나이가 있어도 상관은 없다.


“가공 대리점을 시작해야하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시공만 하다보면 가공 마진이 아쉬웠고 좋아진 세상 탓에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시안의 우수한 PVC 새시로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82년부터 30년간 창호 외길 인생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죽1리에 위치한 현직ENG는 오붓하게 직원 두 명에 오천택 대표 이렇게 셋이 오순도순 일을 하고 있다. 경기가 어려워도 현진ENG의 세 명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일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시간이 오후 6시를 넘었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현장으로 떠나는 그의 모습에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오천택 대표가 창호 업계에 일을 시작한 것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 대표가 처음 얻은 직장은 창호 시공업체였다. 그 당시 20대의 젊은 나이였고 뭐든 닥치는 대로 하는 젊음과 도전의식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PVC 새시보다는 알루미늄 새시가 대세였기 때문에 알루미늄 시공부터 시작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창호 일은 근무 조건과 급여가 형편없었다고 말한다.
그때 전문 목수의 일당이 1만5천원이었다고. 그가 처음 시작한 직장은 주말도 없었으며, 처음 받은 월급은 고작 7만원이었다. 이 돈은 지금의 하루 일당 잡부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3달을 버티면 10만원으로 올려주었다. 오 대표는 “그 당시 창호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보조로 시작했기에 당시에는 일반적인 금액이었다”고 말한다. 그 당시 기술자들도 한 달에 5~60만원 수준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 대표는 그 정도의 월급도 돈이 남았다고 한다. 매일 밤 12시까지 일이 했고 주말도 없었기 때문에 돈 쓸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군제대후 많이 바뀌었다.


87년도에는 창호 업계에 젊은 사람들이 사라졌고 창호 업계의 초봉이 80만원이 되었다. 오천택 대표가 처음 받은 월급보다 10배가 넘는 금액으로 껑충 오른 것이다.


여러 가지 고생을 하면서 창호의 시공 및 가공 기술을 배운 오 대표는 93년도부터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가공이 아닌 시공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PVC 창호 시공 뿐만 아니라 강화도어도 조립 및 제작을 함께 했었다.


사업 초기 거래처 확보가 가장 어려웠다고 오 대표는 회고한다. 사업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 월급을 더 못 가져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후 4년간 동분서주하며 성실이 일한 결과 월급쟁이 생활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IMF 때라고 말한다. 부도를 수차례 맞았고 수금도 뜻대로 되지 않아 그때까지 벌어 놓은 돈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IMF 때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벌어 놓은 돈을 다 까먹었지요. 하지만 어차피 無에서 시작한 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다행이 일은 많았습니다.”

 

시안 대리점과 인연의 시작

현재의 평택 공장은 2년 전 시안 대리점을 시작하면서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세웠다. 공장은 150평 정도이다. 시공 위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가공은 전문가가 아니었다. 초창기라 거래처가 없었기에 낮에는 영업을 하고 밤에는 공장에서 PVC 새시 가공 기술을 연마했다.


오천택 대표는 일당백의 정신으로 본인 혼자 영업을 시작했고 좋았던 인간관계로 한두 달 후 매출 향상 효과를 보았다. 초창기에는 한 달에 한 파렛트도 작업을 못했지만 현재는 그의 몇 배되는 양을 소화해 내고 있다.


시안은 경기도에 위치한 (주)하이산업(대표 염성준)과 함께 PVC 압출 업체 중에 견실하게 제품 생산 및 대리점 관리를 해온 업체로 제품의 우수성을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시안과 현직ENG의 성실함이 만나 2년간 꾸준한 성장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녹녹치 않은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IMF보다 더 어려운 시기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할 정도. 하지만 6시에 출근해 10시까지 공장의 불이 꺼지지 않는 오 대표의 부지런함은 칼바람이 부는 창호 업계에서 긍정적인 면이 아닐 수 없다.


“창호 시장은 많은 변수도 많고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을 좀더 노력해서 맘 편하게 사는 것이 저의 소박한 꿈입니다.”(031-667-6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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