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PVC, 알루미늄 등 창호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수익성 악화가 개별 기업의 감내 수준을 넘어서면서, 고사 위기에 처한 창호업계는 결국 판매가 인상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각 업체들은 건축경기 침체와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 속에 그동안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 왔지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자 가격 현실화에 대한 공감대가 업계에 폭넓게 형성되는 모습이다.
미-이란 전쟁의 여파로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에 비상이 걸리면서 창호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향후에도 수익성 악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결국 창호업계는 생존을 위한 판매가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유-나프타-에틸렌’ 도미노 폭등
이와 같은 상황은 창호산업의 양대 축인 PVC와 알루미늄 소재 모두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그중 PVC창호업계는 원유가격 상승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원유가격 상승은 곧바로 PVC의 주원료인 에틸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제정세가 불안정할 때마다 나타나는 ‘유가 상승, 나프타 가격 상승, 에틸렌 가격 상승, PVC 레진 가격 상승, 창호 판매가격 상승’의 도미노 현상이 재현되는 모양새다.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공정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원자재 수급 자체도 불안정해진 상태다.
이미 전쟁이 시작된 3월부터 나프타 가격이 2배 가량 폭등했지만, 창호 프로파일 제조업체들은 4월 이전까지 재고 주기를 거치며, 원가 상승의 영향을 최소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5월부터는 원자재가 상승분이 실제 생산 원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수익성 악화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LG화학, 한화솔루션 등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PVC수지 국제가격은 톤당 110만원대로 확인된다. 2025년 톤당 100만원 안팎에서 소폭 상승하기는 했지만 전쟁 초기라 그 폭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2분기 들어 급격한 가격상승이 나타나 5월 중순 기준 PVC수지 국제가격은 톤당 140~150만원대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전년 대비 40~50% 가량 급등한 수준이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국제유가가 유지되면서 업계에서는 PVC수지 가격이 톤당 170~180만원대, 혹은 그 이상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물가 통계에서도 감지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생산자물가지수(2020=100)에 따르면 2026년 2월 111.30이던 PVC수지의 생산자물가지수는 3월 124.80으로 급증했으며, 4월과 5월에도 추가적인 상승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제 정세 불안정에 더해 고환율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원자재 가격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며 “원자재 가격이 생산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창호 산업의 특성상, 최근의 비용 상승은 개별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수요 감소로 공장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까지 폭등하면 제품 하나를 팔 때마다 감당해야 할 고정비 비중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며 “매출은 줄고 원가는 오르는 다방면의 압박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판매가 인상 ‘더는 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PVC창호업계는 그동안 가격 인상에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가뜩이나 건축경기 침체로 수요가 감소한 상황 속에서 선제적으로 가격을 올리면 거래처의 반발, 대리점 이탈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대형 건자재 업체에 물가 안정 협조를 구하는 등 건설 원가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 들지 못하는 흐름이 이어져 왔다. 최근 들어 일부 대기업군 업체가 품목별로 소폭의 가격인상을 결정하기도 했지만, 업계 대부분이 인상안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감내하며 눈치를 살필 수 있는 상황이 임계치에 다다랐다는 목소리가 업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경쟁구도를 의식한 무리한 단가 동결은 결국 원가 절감을 위한 저가 부자재 사용으로 이어져, 건축물 안전과 에너지 효율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중소업체들은 ‘생존’의 측면에서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모습이다. 비아파트 건축시장의 붕괴로 인해 먹거리가 현저히 줄어든 상황에서 최소한의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경영악화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인 수준으로의 전반적인 판매가 인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가 대중소기업을 막론한 업계 전반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원자재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및 압출 공정에 필수적인 전기요금과 산업용 가스 요금이 최근 1년 새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다”며 “또한, 유가 급등으로 전국 단위 배송 물류비까지 치솟고 있으며, 제조 원가 외에 영업 비용 측면에서도 인상 요인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공급망 위기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건설업계와 정부,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제값 주는 문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며 “선두권 업체가 가격을 올리고 나면 통상 1~3개월의 시차를 두고 후발 주자들이 따라갔던 이전의 사례를 감안하면, 상반기 중 업계 전반에 판매가 인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AL창호 업계도 원자재가 폭등 영향
알루미늄 창호업계 역시 원자재가 상승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에너지 집약 산업인 알루미늄 제련이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비용 상승에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결국 국제 알루미늄 시세(LME)를 유례없는 수준으로 밀어 올리며 제조 원가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비철금속협회의 LME 시세 정보에 따르면, 2026년 5월 13일 기준 알루미늄 시세는 톤당 3729.5달러다. 중국의 제련소 생산 감축 이슈와 러시아산 금속 제재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2024년부터 본격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이미 톤당 3000달러 이상을 유지해 온 상황 속에서 미-이란 전쟁이 기름을 더 끼얹은 형국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알루미늄1차정련품 생산자물가지수(2020=100) 역시 지난 3월 206.45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5월에는 이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알루미늄 압출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LME 시세가 오르면 환율이 내리는 식으로 상쇄 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둘 다 고공행진하는 최악의 상황”이라며 “소폭의 가격인상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들도 존재하지만, 업계 전반에 판매가격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중소 알루미늄 압출 및 창호 제작 업체들의 연쇄적인 경영악화,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