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oor In]국내 건축용 판유리 내수증가, 수입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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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or In]국내 건축용 판유리 내수증가, 수입 하락
  • 월간 WINDOOR
  • 승인 2009.01.1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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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국가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순
국내 건축용 판유리 내수증가, 수입 하락

 

 

유리는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건축물에 빛이 들어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축자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리에는 화재로부터 안전을 지켜주는 방화유리, 여러 장의 유리를 겹친 복층유리, 열을 반사시키는 로이유리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유리의 기초는 판유리에서 시작된다. 이번호에서는 판유리의 시장현황을 점검해보았다.

 

내수시장 꾸준한 증가세
국내 건축용 판유리 내수시장은 지난 2000년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2000년에는 978,260톤에서 2001년에는 1,152,122톤, 2002년에는 1,468,256톤, 2003년에는 1,477,953톤, 2004년에는 1,493,287톤으로 꾸준히 성장하다 2005년에는 잠시 주춤해 1,389,857톤으로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2006년 들어 다시 1,416,874톤을 보였으며 2007년에는 1,480,410톤을 기록했다.  
수입물량 또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다 2005년 이후 하락하고 있다. 연도별 수입물량을 살펴보면 2002년에는 381,560톤, 2003년 313,466톤, 2004년 311,915톤, 2005년 339,854톤, 2006년 302,275톤, 2007년 279,164톤이다.
현재 국내 복층유리 KS인증업체는 207개로 나타났다. 한국표준협회 KS인증본부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KS를 획득하면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특히 지자체나 공공기관 등에 납품할 경우 유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나치게 표준규격을 높게 잡는다면 중소업체들에게 큰 어려움으로 다가 올 것이며 그것으로는 KS자체의 의미가 없어질 것으로 바라봤다.

 

수입물량 감소
그렇다면 판유리를 국내에 수입하는 업체는 어디일까? 국내에 판유리를 수출하는 국가는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독일 등으로 나타났다. 이중 중국이 가장 많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뒤를 이어 인도네시아, 태국 순이다.  
2004년에는 중국이 88%를 차지했으며 2008년에는 92%, 2006년에는 87%, 2007년에는 78%였으나 2008년도 상반기 들어 55%로 급감했다. 여기에는 인도네시아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점차 높아지면서 중국제품의 감소가 나타난 것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의 국내 수출량은 5%였으며 2005년에는 4%, 2006년에는 4%, 2007년에는 10%까지 올라서 2008년 상반기에는 27%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태국 또한 2004년도에는 0.99%에 불과했으나 꾸준한 성장을 보여 2008년 상반기에는 1.87%대에 들어섰다.  
건축용 판유리 판매현황을 살펴보면 2003년에는 1,164,487톤, 2004년에는 1,181,372톤, 2005년에는 1,050,003톤, 2006년에는 1,114,599톤, 2007년에는 1,201,246톤 2008년 11월 현재는 1,109,790톤으로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판유리의 역사
투명한 유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유리가 창조된 때로부터 오랜 뒤인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핸드 블로잉(Hand Blow ing)법이 발명되면서 부터이다. 일단 투명한 유리가 만들어지자 그것을 창에 끼워 비와 바람을 막음과 동시에 태양 광선을 실내로 끌어들이며, 창 밖의 풍경을 실내에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사람들의 가슴에 싹트게 되었다.
최초에는 병의 바닥을 잘라 벽에 끼움으로써 실내로 빛이 들어오도록 하였다. 다음 단계에서는 유리의 가는 조각을 틀에 끼워 창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인간의 소망은 그에 그치지 않고 판장의 유리를 갈망했다. 투명하고 판판한 유리에의 동경-이것이 곧 판유리 탄생의 원동력이다.

 <판유리 수입국가 현황>
중세기에 이르러 각종 색유리 조각을 이용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사원의 창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 11세기로 부터 18세기에 걸쳐 베니스를 중심으로 유리의 건축으로의 도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창유리는 제조가 어렵고, 고가였으므로 교회, 왕족이나 부호의 저택 등 극히 한정된 건물에만 사용되었다. 사치품으로서 창유리의 사용에 대한 세금이 부과된 시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5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의 비인의 경우, 유리창을 사용한 가옥이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본격적으로 유리제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76년 문호개방 이후이며, 서울, 부산, 인천등지에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창유리를 들여와 집을 짓기 시작하였고, 거울이나 유리병 등도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명동성당에 유리창이 끼워져 세인을 놀라게 한 것은 1898년의 일이었다. 이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램프외피유리 정도는 가내수공업형태로 제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1900년대에 들어와서 유리병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수입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직접 제조하여야 겠다는 근대화된 유리공업의 필요성을 절감에게 되었다.  김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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